부끄러움 수치심 체면

가장 쓸데없는 것 세 가지.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유명한 말이 있지만 그 의미는 내가 뭘 잘못했는지 알고 충분한 감정적 지불을 할 줄 알아야 한다이지, 실제로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느끼는 것은 아닐 것이라 본다.

부끄러움과 수치심, 체면을 중시하는 것의 근원에는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다. 남 앞에서 쪽팔리기 싫은 두려움, 무시 당하기 싫은 두려움, 그룹 내 주류에서 밀려나기 싫은 두려움 등.

나는 이 마음들을 온전히 버려야 비로소 나 자신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실수해도 당당한 태도가 부끄러움을 드러내고 남들 앞에서 주눅 드는 것보다 장기적으로는 훨씬 더 좋다고 본다.

누가 실수나 잘못을 하고 뭘 잘 몰랐을 때 사람들이 이런 이야길 할 때가 있다. “저 나이 되도록 뭐했냐.” 그런데, 우리는 꽤 많이 볼 수 있다. 나이를 많이 먹어도 사람들은 특정 부분에 대해 너무 모르고, 아이들이나 하는 실수를 할 때도 많다. 누구나 다 그러고 산다는 것이다. 실수에 대해 우리가 배워야 할 태도는 그저 배우려고 노력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나머지는 전부 본질에서 벗어나 있다.

실수하고 사과하고 주눅 드는 것보다 실수해도 뻔뻔하고 당당한 게 낫다. 나 자신만 바라보면 이번 실수를 그저 다음 번에 반영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니까. 타인의 평가 같은 건 일시적인 것이다. 결국 잘하면 바뀐다. 그러니 본질도 아니고 신경 쓸 필요도 없다.

감정적 지불

스튜어트 다이아몬드의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에서 처음 본 개념. 특정 상황에서 맥락에 맞는 적절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감정적 지불을 잘하는 사람을 두고 우리는 보통 ‘사회성이 있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타인이 내게 감정적 지불을 하기를 기대한다. 내가 뭔가를 했으면 인정이나 칭찬을, 내게 뭔가를 부탁할 때는 정중함과 채무감을, 내가 뭔가를 주면 고마워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모르는 사람은 내게 예의를 갖추기를 바라고, 윗사람이라도 내게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중을 하기를 바란다.

반대로 대부분의 사람은 타인에게 감정적 지불, 특히 매우 정중하거나 본인을 굽혀야 할 상황을 싫어한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이 부분이다. 무언가를 잘못하고 무언가를 부탁할 때, 무언가를 받았을 때 감정적 지불을 잘 하지 못하면 문제가 생긴다.

사회생활은 본질적으로 감정적 지불의 연속이다. 극단적으로, 음식점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를 생각해보자. 그는 항상 고객에게 감정적 지불을 한다. 고객은 돈 주고 음식을 교환하는 것이지만, 자영업자는 그것에 대해 충분한 고마움을 표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고객은 떠난다. 직장생활 역시 마찬가지다. 필요할 때마다 감정적 지불을 하며, 우리는 누군가에게 부탁을 하고 도움을 받는다. 일 잘하는 사람 중에 이걸 못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물론, 그림을 그리는 일이나 코딩 등 본인의 업무를 오로지 혼자 처리하는 사람들은 여기에 해당되지 않겠지만.

나는 생각한다. 이 감정적 지불을 하는 데 거리낌이 없어야 한다고. 권력 최상단에 올라가서도 고객들이나 인맥들 만나서 감정적 지불을 해야 하는 게 현대인들의 모습이다. 대기업 회장들도 회사 내에서야 타인 눈치 볼 필요 없겠지만, 거래처 사람들을 만나거나 국정감사 같은 데 끌려나가면 감정적 지불을 해야 한다.

감정적 지불을 잘 하고 살자. 그래야 원하는 것을 충분히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