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업 또는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사람과 함께 일하는 일

공사 구분.

입에 담기는 쉬우나, 실천하기는 어려운 말이다. 특히 사적으로 친분이 있는 사람과 일을 함께 하게 되면 이 원칙 또는 기준을 준수하는 게 더욱 어려워지는 것 같다.

이것이 어려운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일이 잘 안 될 때 서로 책임을 묻기가 쉽다.
  2. 둘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과 일할 때 자기 체면을 지키느라 상대를 공격하기 쉽다.

따라서, 성공적인 동업(직장에서 같이 일하는 것 포함)이 되기 위해서는 위 둘을 피하는 게 중요할 것이다. 일의 결과가 좋아야 하고, 둘의 직장 내 관계 구도가 공적으로 적절한 수준을 유지하는 게 중요할 것이다. 결국은 전부 공사 구분이 된 상태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니, 이게 말장난일지도 모르겠다.

조만간 내가 비슷한 상황에서 일을 하게 될 것 같은데, 나는 이 부분을 확실히 해야 할 것이다. 일할 때는 공적인 상대로 대한다. 감정을 섞지 않도록 노력한다. 함부로 말하는 것을 주의한다.

부끄러움 수치심 체면

가장 쓸데없는 것 세 가지.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유명한 말이 있지만 그 의미는 내가 뭘 잘못했는지 알고 충분한 감정적 지불을 할 줄 알아야 한다이지, 실제로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느끼는 것은 아닐 것이라 본다.

부끄러움과 수치심, 체면을 중시하는 것의 근원에는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다. 남 앞에서 쪽팔리기 싫은 두려움, 무시 당하기 싫은 두려움, 그룹 내 주류에서 밀려나기 싫은 두려움 등.

나는 이 마음들을 온전히 버려야 비로소 나 자신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실수해도 당당한 태도가 부끄러움을 드러내고 남들 앞에서 주눅 드는 것보다 장기적으로는 훨씬 더 좋다고 본다.

누가 실수나 잘못을 하고 뭘 잘 몰랐을 때 사람들이 이런 이야길 할 때가 있다. “저 나이 되도록 뭐했냐.” 그런데, 우리는 꽤 많이 볼 수 있다. 나이를 많이 먹어도 사람들은 특정 부분에 대해 너무 모르고, 아이들이나 하는 실수를 할 때도 많다. 누구나 다 그러고 산다는 것이다. 실수에 대해 우리가 배워야 할 태도는 그저 배우려고 노력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나머지는 전부 본질에서 벗어나 있다.

실수하고 사과하고 주눅 드는 것보다 실수해도 뻔뻔하고 당당한 게 낫다. 나 자신만 바라보면 이번 실수를 그저 다음 번에 반영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니까. 타인의 평가 같은 건 일시적인 것이다. 결국 잘하면 바뀐다. 그러니 본질도 아니고 신경 쓸 필요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