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은 의도를 왜곡시킨다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한 채, 또는 무시하지 못한 채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의 퍼포먼스는 자연스럽지 못하다. 행동 에너지가 시원하게 발산하지 못하고 흐름이 끊어지는 느낌이 있다.

반면, 두려움을 극복한 사람의 에너지는 시원하게 뻗어나간다. 보는 사람을 편안하게 한다.

우리는 매일 에너지를 발산하고 살기 때문에, 그 에너지가 왜곡되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타인에게 정확한 내 생각과 에너지를 내 의도대로 전달하려면 반드시 두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대공황 시절 전 미 대통령인 프랭클린 D. 루즈벨트가 취임 연설에서 다음의 말을 했는데 늘 마음 속에 새겨야 할 격언이라 생각한다.

“두려워할 것은 오직 두려움 그 자체뿐이다.”

부끄러움 수치심 체면

가장 쓸데없는 것 세 가지.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유명한 말이 있지만 그 의미는 내가 뭘 잘못했는지 알고 충분한 감정적 지불을 할 줄 알아야 한다이지, 실제로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느끼는 것은 아닐 것이라 본다.

부끄러움과 수치심, 체면을 중시하는 것의 근원에는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다. 남 앞에서 쪽팔리기 싫은 두려움, 무시 당하기 싫은 두려움, 그룹 내 주류에서 밀려나기 싫은 두려움 등.

나는 이 마음들을 온전히 버려야 비로소 나 자신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실수해도 당당한 태도가 부끄러움을 드러내고 남들 앞에서 주눅 드는 것보다 장기적으로는 훨씬 더 좋다고 본다.

누가 실수나 잘못을 하고 뭘 잘 몰랐을 때 사람들이 이런 이야길 할 때가 있다. “저 나이 되도록 뭐했냐.” 그런데, 우리는 꽤 많이 볼 수 있다. 나이를 많이 먹어도 사람들은 특정 부분에 대해 너무 모르고, 아이들이나 하는 실수를 할 때도 많다. 누구나 다 그러고 산다는 것이다. 실수에 대해 우리가 배워야 할 태도는 그저 배우려고 노력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나머지는 전부 본질에서 벗어나 있다.

실수하고 사과하고 주눅 드는 것보다 실수해도 뻔뻔하고 당당한 게 낫다. 나 자신만 바라보면 이번 실수를 그저 다음 번에 반영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니까. 타인의 평가 같은 건 일시적인 것이다. 결국 잘하면 바뀐다. 그러니 본질도 아니고 신경 쓸 필요도 없다.